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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의 행복: 나다니엘 호손과 빌 브라이슨의 발견

by 디딤돌_ 2026. 5. 15.

영국인들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면 그들의 변덕스러운 날씨나 맛없기로 소문난 음식들로 인해 그들이 행복하기 어려운 사람들일 거라 추측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미국 작가는 영국인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 묘사했습니다. 저 역시 영국 직장 생활 초기에는 매일 찾아오는 티 브레이크 (영국인들은 Coffee Break라고 하지 않고 Tea Break라고 한다)에 진심인 그들이 의아했지만, 점차 그 소박한 여유에 동화되며 행복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영국에 살며 깊이 공감하게 된 19세기 작가 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 과 유명한 여행문학가 빌 브라이슨 (Bill Bryson)의 통찰을 빌려, 영국 특유의 자부심과 전통, 그리고 그들만의  인간관계 방법을 살펴보려 합니다.

 

1. 나다니엘 호손이 본 영국인들의 견고한 자부심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은 한때 리버풀 주재 미국 영사로 근무하며 영국 사회를 지근 거리에서 관찰했습니다. 그는 1863년 그의 저서 『우리 옛 고향』을 통해 영국인 특유의 견고한 자부심을 예리하게 그려냈습니다. 그가 관찰한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국가적 뿌리와 문화적 토대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는, 대단히 강렬한 확신을 지닌 존재들이었습니다. 호손의 기록처럼 영국인들은 타인의 기준이나 외부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방식과 전통에 대해 묘한 확신을 가지고 있죠.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답답한 고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그 확신이야말로 내면을 평온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호손보다 훨씬 나중에 영국에 도착한 저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때로는 행정 처리가 느려 여기저기 줄을 서야 하는 상황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져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이들에게서는 기묘한 긍지가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문명인이기에 마땅히 줄을 서고 규칙을 지킨다"라는 그들만의 자부심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의 행복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단단한 자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2. 효율보다 가치, 영국인이 전통을 고수하는 이유

영국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오래된 것을 꽤 오랫동안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현지인들에게 왜 옛것을 그토록 아끼는지,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왜 여전히 왕실 제도를 유지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원래 그런 것"이라는 반응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집에 오래된 앤티크 의자가 하나 있는데, 요즘 가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요. 조금 불편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굳이 버릴 필요는 없잖아요?”

 

이 짧은 대답에는 영국식 사고방식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통은 단순히 효율성이나 경제적 가치로 계산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여졌습니다. 조금 낡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지라도,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가 삶의 일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유와 존중의 태도는 영국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정서적 토대 중 하나입니다.

 

3. 영국인들의 행복한 인간관계를 지키는 3가지 핵심 키워드

영국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원칙으로 인간관계를 행복하게 지켜냅니다.

 

① 절제된 표현의 미학

영국인들은  "최고다" 혹은 "혁신적이다"와 같은 과장된 표현을 극도로 아낍니다. 대신 "Not bad(나쁘지 않네요)", "Quite interesting(꽤 흥미롭군요)" 같은 절제된 표현(understatement)을 즐겨 사용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 말이 칭찬으로 느끼지 않았었는데, 사실은 꽤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감정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와 품위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그들만의 세련된 배려 방식입니다.

 

② 신뢰와 관계를 우선하는 문화

영국 비즈니스는 단기적인 성과나 수치보다 “이 사람과 오래 함께 일할 수 있는가”라는 인간적인 신뢰를 먼저 살핍니다. 딱딱한 회의실서도, 펍(Pub)이나 식사 자리에서 스몰토크를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비즈니스를 단순한 거래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은 관계로 정의하는 그들만의 여유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아직 스몰 토크에 약하다면 지난번 저의 글 영국 비즈니스 문화: 왜 그들은 '결론'보다 '과정'을 원할까? 에서 답을 찾으실 수도 있습니다.

 

③ 타협 없는 원칙 준수와 정직함

때로는 그들의 느긋함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한 원칙 준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 번은 런던의 한 매장에서 한국에서 수년간 문제없이 사용하던 신용카드를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카드 뒷면에 '서명(Signature)'이 없다는 아주 단순한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단 한 번도 지적받지 않았던 부분이라 당황스러웠지만,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작은 원칙 하나조차 끝까지 고수하는 그 고집스러운 정직함이 지금의 영국 사회를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라는 사실 말입니다.

 

따라서 영국인과 일을 함께 하고 싶다면, 신용카드 서명 같은 사소한 디테일부터 다시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는 단순한 형식을 넘어, 상대의 원칙과 신뢰를 존중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영국식 해학, 블랙 유머의 힘

영국 문화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유머입니다. 특히 영국식 블랙 유머는 비극적인 상황조차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누군가 영국 음식이 맛없다고 놀리면, 그들은 당황하기보다 오히려 이렇게 받아칩니다.

“맞아요. 우리 음식이 좀 그렇죠.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어느 나라에 가도 현지 음식을 미슐랭급으로 즐길 수 있는 강철 미각을 얻었답니다.”

 

자신의 약점을 쿨하게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유머로 승화시켜 버리는 능력은 억지스러운 긍정보다 훨씬 단단한 낙천성으로 다가옵니다. 툭 던지는 말속에 은근한 체념과 여유, 그리고 웃음이 함께 녹아 있는 이들의 유머는 삶의 고단함을 씻어내는 훌륭한 치료제 역할을 합니다.

 

5. 빌 브라이슨이 포착한 영국의 소박한 일상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은 저서 『발칙한 영국 산책(Notes from a Small Island)』을 통해 영국인들의 이러한 모습을 무척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묘사합니다. 그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늘 투덜거리고, 변덕스러운 날씨, 기차 연착, 정부 정책 등 모든 것에 불만을 토로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삶을 대하는 만족도는 매우 높다고 봤습니다.

 

영국의 겨울은 춥고 축축합니다. 하지만 그런 날씨 속에서도 영국인들은 따뜻한 블랙티 한 잔과 소박한 디저트로 그 시간을 '행복한 의식'으로 바꿉니다. 행복이 거창한 성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찻잔, 오래된 펍의 공기, 비 오는 거리의 냄새 같은 일상의 조각들에서 온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그들의 태도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소확행'의 원형과도 닮아 있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마치며: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힘

호손이 발견한 자부심과 브라이슨이 사랑한 여유는 결국 ‘자기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는 단단한 힘’에서 비롯됩니다.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만의 원칙을 중요시하는 태도는 진정한 행복이 내 주변의 사소한 조각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를 일깨워 줍니다.

 

오늘 여러분의 일상을 지탱해 준 작은 소확행은 무엇이었나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그 행복을 댓글로 나누어 주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영국 현지 생활에서 얻은 문화적 통찰과 생생한 해외 취업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해 나가겠습니다.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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